동포사회 최초의 사고 사(死)는 65년도 3차 이민자 아무개 (당시 40대)氏다. 산타 마리아 농장 근처에서 교통 사고였지만 괴한에게 피살된 동포는 100명 넘는다는 것이다. 이는 원로들의 증언에 의한 비공식 통계(이민53년x年평균 2명=106명)이며 재산상 피해는 수천만불 이라고 한다. 문제는 앞으로 치안은 더 악화 될것이며 피해는 증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동양인들이 우선적인 지목 대상이라니 신변안전이 중요한 문제다. 브라질에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얻어진 동포들의 이민삶도 예외 일수는 없을 것 같다.
사진 처럼일때는 '아낌없이
주련다' 가 상책이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잠시나마 한인들이 무서운
존재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 초부터 브라질에 태권도가 처음으로 보급될 때 당시 조상민(현재 미국 거주)사범을 비롯한 故 김상인,
권금준, 김용민, 이우재, 박봉서, 임창선, 강홍섭, 홍성장, 이태보 등 태권도 사범들의 역할이었다. 이마로 벽돌을 박살내고 두꺼운 송판을
맨손으로 깨고 권총 든 괴한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태권도 격파와 호신술 시범은 한인들을 모두 슈퍼맨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故김남수(반공포로
출신)사건이다. 60년대 말, '조셍찡’이라는 일본 식당주인을 칼로 난도질하여 살해한 사건이 대서특필 되었다. 형집행 정지로 출소한 김
씨는 이번에는 중국인을 권총으로 쏴아 죽인 두 번째 살인사건은 톱뉴스였다. 따라서 태권도와 김 씨의 동양인(일본 중국)살인사건은 생소
했던 나라(國)에서 온『꼬레아노』들을 무서운 존재로 느끼게 했다.
용감(^^)했던 김 氏는 복역 24년째
되던 1993년 9월에 당시 동포언론(토요신문사) 창간 1주년 기념사업으로 벌렸던 구명운동으로 특별 사면 했다. 사면 조건은 대한민국 정부(당시
김정순 SP총영사)가 신변을 인수하고 출소 12시안으로 브라질 영토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대한항공이 제공한 항공권으로 김동욱 신부(당시 한인
성당 주임신부)가 주선한 음성 꽃동네(당시 오윤진 신부)로 김 氏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손을 잡은 글쓴이는 그를 영주귀국 시켰다.
지금까지 동포 살인사건중 특별히 기억 되는 3건이 있다. 70년대 후반, 불법 체류자들을 연방경찰에 밀고 해온 金 아무개와 90년대 중반에 사체놀이 하던 李 아무개 일가족(5명) 몰살 사건이다. 金 아무개는 휘야쇼 그란지로 납치되어 밧줄로 목에 졸라 죽인 후 확인 사살후 암매장 당했고 李 아무개는 브라스 지역 2층 개인 주택에서 살해 당한 것이다. 또 80년도 초에 혈기왕성한 군인 출신(육군중령)의 시계점에 든 권총강도에게 덤비다가 피살된 사례는 권총강도에는 절대 반황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예전에는 동포 피살 사건이 일어나면 온통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러던 1990년대 중반에 한인치안대책 회의를 한 적이 있다. 이날 참석한 어느 목사는 “동포사회 범죄예방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합시다” 고 했지만 이와 달리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제가 앞장 설때니 우리도 총 들고 나섭시다” 라던「송 무 목사」의 외침에 뜨거움을 지금도 느낀다. 아~~5만 동포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수 있는 ‘법 보다 주먹이 가깝다’ 는 지혜(^^)를 어디서 Copia(^^)해 올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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