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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폴 스미스'를 아시나요?

[본 기사는 패션업에 종사하는 교민들을 위해 한국과 브라질 미국과 유럽등의 오픈된 소스들에서 가져 온 기사입니다.
딱히 어떤 옷을 잘르세요. 라고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패션을 이해하고 트랜드의 흐름이 어떻게 가고 있는가를 느끼기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은 전혀 없으며, 교민들에게 좀더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 달무지개 ] 


Hello My Name Is Paul Smith’ 전시회를 통해 본 폴 스미스의 패션 철학
 
 
‘내 이름은 폴 스미스 (Hello My Name Is Paul Smith)’가 그 베일을 벗고 대중에 공개된 지도 2년이 넘었다. 폴 스미스 사무실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의 독창적인 공간과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준 수 많은 물건, 작품, 재료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폴 스미스라는 브랜드가 선 보인 패션 상품의 역사에 집중 할 지, 혹은 디자인 뮤지엄이라는 장소 명칭답게 가구, 자동차 등 그의 非패션 작업들에 초점을 맞출 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전시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의 패션 작업들은 큰 그림으로 그려지고 그의 인생과 창조성에 집중한 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작았지만 글로벌 사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된 노팅엄의 가게, 파리의 캣워크 쇼, 개성 있는 글로벌 매장들은 전시의 중심은 아니지만 폴 스미스만의 디자인 접근법에 대한 논리적 이유를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Hello My Name Is Paul Smith
 
중고품 가게와 고등학교 미술실의 중간쯤의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폴 스미스의 사무실은 지난 40년간 그가 수집한 팝 컬쳐 작품들로 잔뜩 뒤엉켜 있다.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에서 문을 연 전시는 영국의 가장 성공한 디자이너이자 지난 해 글로벌 사업으로 전환한 후 6억 5천 3백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만들어 낸 폴 스미스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해 주는 수많은 물건들의 집약체이기도 하다.
 
그가 영감을 받은 것들, 그의 작업 방법들에 대한 소개는 전체 전시를 지지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폴과 그의 작업들을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해 준다. 유명한 디자이너의 전시이니만큼 화려 하고 과시적인 방법으로 표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택한 방법은 평소 그와 닮은 간결한 멋과 디테일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디오 서비스를 통해 그와 관련 있는 작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전시의 친절한 매력 중 하나이다.
 
영국의 대표 매체 가디언紙는 폴 스미스의 전시를 소개하며 전시를 통해 알 수 있는 다음의 5가지를 소개했다.
 
1. 그는 수집가이다.
 
갤러리의 벽면 공간은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는 팝 아트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 나 앤드 워홀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전시용으로 선택된 이유는 그들의 금전적 가치 때문이라기 보다는 폴 스미스 자신을 나타내 주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가 수집 한 작품들은 유머, 비현실적 사랑, 환각적 표상과 같은 특정 주제가 있으며 전체적으로도 꽤 아찔한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전시의 첫 공간을 쭉 따라 스미스의 개인 소장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 그는 컬러를 사랑한다.
 
그의 수 많았던 컬렉션 중 선정된 독특한 의류들, 수천 색상의 단추로 채워진 벽면, 선명한 색상의 자수, 패턴이 돋보이는 그의 최근 파리 런웨이 쇼를 담은 비디오 전시를 보면 그의 컬러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가 있다.
 
3. 그는 사진을 사랑한다.
 
오디오 해설 서비스에서 그는 자신의 카메라를 메모장으로 표현한다. 확실히 사진은 그가 열정을 보이는, 굉장히 박식한 분야이다. 전시에 사용된 그가 소유한 사진 작업은 물론이고 쇼에서 보여지는 스미스 자신이 찍은 수준 높은 작업들이 이를 증명한다.
 


 
4. 그는 자신의 와이프, 폴린의 영향력을 매우 중요히 여긴다.
 
폴린은 기본적으로 패션에 대해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젊은 스미스를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쿠튀르 쇼에 참석시키기 위해 파리로 데리고 갔고 이 후 그들이 갔던 파리의 호텔 방은 그들의 첫 번째 쇼룸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 폴 스미스 컬렉션에서 폴린이 작업한 스케치들도 공개된다.
 
5. 그는 여행을 사랑한다.
 
스미스가 여러 곳으로 여행을 즐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글로벌 사업 경영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가 여행하는 진짜 목적은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오디오 해설에서 그는 한 장소를 24시간 방문하면 보통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한다고 설명한다. 여행지의 스트리트 마켓은 특히나 그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며 전 세계에서 컬러와 디테일을 수집하는 수집가의 열정을 확실히 표출 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장의 모습















폴 스미스의 겸손한 문화
 
지난해 4.2%의 매출 신장을 이루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폴 스미스의 사무실은 규모가 크지도 겉 모습이 번지르르하지 않다. 폴 스미스의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쥴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에는 빵과 중국음식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누가 보스인지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의 카리스마는 전 과정을 부드럽게 아우르고 있으며 폴과 팀 사이에는 강한 동질감이 존재한다.
 
스미스는 사업 지분의 60%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40%는 대외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일본인 투자자, 이토치(Itochi)의 소유다. 글로벌 브랜드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이지만, 그는 젊고 활기 넘치는 직원들을 상대로 딱딱한 권위를 주장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그의 따뜻함은 놀랄 정도다.
 

폴 스미스 사무실의 그의 책상
 
폴 스미스 전시회 방문자들은 1970년대에 그가 영국 노팅엄에서 처음 문을 열었던 가게의 크기와 동일한 12 평방피트의 작은 방에 들어서게 된다. 이 작은 방을 통과하면 과거 수십 년 간의 그의 인생과 작업들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도배된 넓은 방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이 작은 공간을 통과해 넓은 곳으로 연결되는 것은 보 잘 것 없는 시작해서 성공에 이를 수 있음을 전하려는 의도이다”고 말한다.
 
브랜드 폴 스미스의 “할 수 있다” 문화는 그의 겸손한 시작부터 형성되었다. 자신의 창조적 비전에 과하게 집중하여 고객 지향적으로 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젊은 디자이너들과는 다르게 폴 스미스는 의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나의 첫 번째 일은 아버지 뻘 되는 사람들이 오가며 상품을 구매해가는 창고에서였다. 나는 각종 잔심부름을 했다. 산업의 뒤 사정을 알게 되는 창고 일은 매우 현실적인 경험이었다. 사장은 쓰지 않는 방 불을 끄고, 종이를 아끼고, 청구서 뒷장은 이면지로 활용 하라는 말들을 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폴 스미스와 폴린 데니어
 
 
패션계로의 입성
 
싸이클 선수를 꿈 꾸던 그는 오토바이 사고 부상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맞게 된다. 이 때 음식점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이 계획중인 가게의 운영을 도와줄 것을 제안했다. 그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말 모르는 상태였고 나는 그 일을 해 봤다고 말했다. 좀 뻔뻔한 말이긴 했지만, 사고 이전에 부티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임대차 계약을 하고 변호사를 만나고 부동산 중개인과 가게를 찾는 등의 일을 하는 등 매장을 준비하기 위해 이모저모를 결정했다. 나는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밤에 가게 문을 닫고, 매니저가 되어 매장 윈도우를 꾸미고,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는 일들을 했다”
 
당시 21살 이었던 폴보다 6살 많은 폴린 데니어(Pauline Denyer)는 영국 왕립 예술 학교에서 패션 디자인 과정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녀는 런던의 예술 및 패션 발전에 대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폴린은 왕립학교에서 당대에 중요한 인물들인 오지 클락(Ossie Clark),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듀오 디자이너 포울 앤 터핀(Foale and Tuffin)과 함께 공부했으며 백화점 하비니콜스(Harvey Nichols)의 전신인 울른스(Woollen’s)에 물건을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폴린은 폴이 옷을 만드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주고 그가 테일러링 코스를 등록하고 첫 가게를 열게끔 격려해 준 사람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우리 패션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작은 가게를 열기로 했다. 평일에는 돈을 벌거나 경험을 쌓기 위한 일들을 했다. 매장을 열고 6년 동안 잡지 ‘더 페이스(The Face)’, ‘아레나(Arena)’등에서 때로는 사진작가로, 때로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발히 활동했다”
 
 
소박한 사업의 시작
 
1979년 마침내 폴은 코벤트 가든의 플로랄 스트리트에서 그의 첫 번째 정식 매장 문을 연다. “내 작은 매장은 코벤트 가든의 유일한 매장이었다”고 말하는 폴은 “나는 토요일 아침이면 거리에 서서 '누구 있나요?‘라고 소리치곤 했다. 우리는 거리에 자생하는 잡초 같은 것이었다”며 웃는다. “내 매장은 유럽 전역을 통틀어 유일한 미니멀리즘 샵 이었고, 사람들은 점차 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매장은 영국의 미니멀리즘 아티스트인 존 퍼슨(John Pawson)이 사랑했던 콘크리트 바닥과 하얀 벽으로 둘러싼 곳이었다. 나는 코르뷔제(Corbusier)와 바우하우스(Bauhaus)에 푹 빠져있었고 슬레이드(Slade)와 피터 위글스워즈(Peter Wigglesworth)가 디자인한 조각들에 매료되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노팅엄의 가게에서 폴 스미스
 
그가 자신이 만든 옷을 팔기 시작해 명성을 얻고 사업적 성공을 이룬 것은 이곳에서의 일이었다.그는 “내 옷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이 전에 입던 옷과는 다른 것이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옷이었다. 하지만 예술 학교가 있는, 장 폴 고티에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우상으로 여겨지는 곳에서는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많은 학생들이 다소 난해한 패션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기는 어려운 옷들은 멋지고 사랑스러웠지만 그것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다. 감각적이면서 입기 편하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내 사업적 감각과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고객 중심적 사업은 작년에만 약 45,000개 수트의 판매를 이룬 성장의 핵심이며, 브랜드가 계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폴 자신이 좀 괴짜이기는 해도 그의 옷은 유별나지 않다. 좋은 울과 부드러운 실크 라이닝 만들어진 수트는 66세인 폴 스미스가 입어도, 18살의 학생이 입어도 손색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대층이 넓다.




LA의 폴 스미스 매장 모습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까지
 
현재 일본에서도 241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폴 스미스는 일본에서의 활약이 유독 두드러진다. 1982년 일본에서의 사업을 시작한 이후, 폴 스미스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을 계속 추진했지만, 일본에서의 브랜드 정착에 대한 관리는 철저히 했다. 일본 붐이 일었던 1980년대에 그는 여타 브랜드와 달리 일본을 단순히 돈벌이 하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고 발이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곳으로 이해했다.
 
그는 모든 디테일들을 관리하기 위한 일본 사무실을 열었다. “우리는 모든 매장, 광고, 매장 이벤트, 그리고 아주 작은 기사까지 관리한다. 사람들은 비디오와 그림 몇 개만 보내면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일본에서 성공한 이유를 묻는 어떤 사람의 질문에 나는 역으로 ‘당신은 일본에 일 년에 몇 번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년에?’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두 번 가봤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지금까지 20번 정도 방문 했고 일년에 4번은 간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에서의 사업 성공의 핵심이었다.
 
글로벌 리테일러로서 폴 스미스의 성공 요인은 모든 매장이 브랜드의 기발함과 진정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의류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폴 스미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고유한 개성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브랜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가 디자인한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3명의 건축가, 12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 소셜 미디어, 마케팅, 언론 전문가도 있다. 나도 광고용 사진을 찍고 많은 잡지들과 일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이 한 빌딩 안에 있기 때문에 관리가 쉬운 편이다”고 말한다.
 

 
중국과 온라인 시장은 최근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분야이다. 그리고 폴 스미스도 내년 한 해에만 함부르크, 런던 히스로 공항, 멜버른의 2번째 매장, 뉴욕의 3번째 직영매장 등의 오픈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상하이와 베이징, 청도, 홍콩, 파나마, 쿠알라 룸푸르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여전이 성황 중이다. 사람들은 이제 폴이 좀 쉬고 느긋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 같다. 과거 작은 가게를 운영 할 때처럼 그는 브랜드가 결정해야 하는 모든 창조적인 결정을 스스로, 혹은 자체적으로 하는 것을 여전히 선호한다.
 
폴은 그가 헌신한 그의 삶의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다시 걸어 갈 때 꽤 감성적이 되었지만 단연코 이 전시는 회고전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강력한 에너지가 브랜드 ‘폴 스미스’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먼 미래에 ‘폴 스미스’ 없는 ‘브랜드 폴 스미스’가 어떤 모습을 보일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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