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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1927.12∼2015.11)의 삶과 정치적 궤적은 우리나라 격동의 현대사 시기와 일치하는 것을 넘어 상당 부분 그가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일 항쟁기에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저항했고, 이어진 신군부 독재에도 맞서는 등 '투사'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여는 데 공헌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금융실명제 도입,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역사바로세우기 등 업적도 남겼지만, 말기인 1997년 외환위기와 아들 현철 씨가 연루된 비리로 얼룩지기도 했다.

앞으로 새로 쓰게 될 역사교과서의 한국현대사 장(章)에도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섰던 김 전 대통령이 주요 인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27∼1950, 거제 '섬소년'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 =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 대계마을에서 아버지 김홍조, 어머니 박부련 씨 사이에서 1남5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당시 멸치잡이 어장을 보유한 아버지 덕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여야 인사들에게 '민주멸치'를 보내준 것도 여기서 출발한다.

동래중학교에 낙방한 1년 후 1943년 통영중학교에 들어간 김 전 대통령은 사천비행장 강제노동 시 한국인 학생을 멸시하던 일본인 반장을 때리고, 교장을 골탕먹인 사건으로로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45년 경남중학교로 편입했으며, 이때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의 하숙방의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붙이고 정치적 꿈을 키운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계획대로 1947년 서울대에 입학한 김 전 대통령은 '순학회(純學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차근차근 정치인으로서의 준비를 밟아갔다.

◇1950∼1953, 장택상의 비서관으로…손명순 여사를 만나다 = 김 전 대통령이 제도 정치권에 입문한 것은 1951년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였다.

그로부터 3년 전 열린 '정부수립기념웅변대회'에 참가해 2등에 당선돼 '장택상 외무부장관상'을 수상한 게 계기였다.

경북 칠곡에서 제2대 민의원 후보로 나선 장 전 부의장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찬조연설도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인 '김영삼 회고록'에서 '고향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1951년 마산에서 '경향고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면 퇴학당하는 이화여대의 약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지만 결혼 사실을 감춰 졸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는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해 대북방송 담당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3∼1968, 자신의 정치를 시작하다…역대 최연소 국회의원 = 김 전 대통령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후 9선을 기록한 김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다선에도 올랐다.

1954년 5월에 열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고향인 거제로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여당인 자유당 이기붕 총무부장의 권유를 받아 이를 수락하고 입당한 뒤 당선됐다. 만 25세의 나이였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젊은이의 대표라는 자부심도 이따금씩 가져보지만 앞으로 4년 동안 순순히 공부하는 시간으로 작정하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지만 정치 환경은 그를 그렇게 '순순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당선되던 해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연임을 위한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고, 7개월 만에 자유당을 탈당해 평생 반독재 투쟁이라는 험로를 걷게 된다. 이듬해인 1955년에는 윤보선, 신익희, 조병옥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한 것이다.

당적을 바꾼 후 열린 제4대 국회의원 선거(1958년)에서는 부산 서구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나 4·19 혁명 이후 1960년 7월 열린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68∼1990, '40대 기수론'부터 민주화 투사로 =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연장 반대집회 및 가두시위를 벌여 서대문 형무소에 23일간 구속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민주당 창당에 참여한 김 전 대통령은 만 37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원내총무에 오르고, 1969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투쟁을 주도하다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초산테러를 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같은 해 만 41세의 나이로 통합 야당인 신민당의 대선 지명대회에 출마하며 내세웠던 게 바로 '40대 기수론'이다.

그러나 1970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시며 평생 앙숙이자 라이벌 관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당시 YS는 경선에서 승리한 DJ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김대중 후보의 승리가 바로 나의 승리이고 국민의 승리"라고 전국을 돌며 지지운동을 하며 정치사에 명장면을 연출했다.

의원직 제명도 헌정사상 최초로 당했다.

1979년 제1야당의 당수로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란 민중혁명으로 미국이 물밑에서 지지하던 팔레비왕정 체제가 무너진 사태를 언급하며 한국 내에서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게 발단이 됐다.

야당이 본회의장을 막아서자 여당은 다른 곳으로 회의장을 옮겨 제명안을 처리했고, 그때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3년 5월 가택 연금된 김 전 대통령은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며 신군부에 온몸으로 대항했다.

최근에야 최장기 기록이 깨진 김 전 대통령의 단식은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며, 정치 역사를 바꾼 한 장면으로 남았다.

이후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시킨 김 전 대통령은 1985년에는 신한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투쟁을 전개하는 등 이른바 '87년 체제'를 탄생시키는 주역이 됐다.

그러나 1987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끝내 이루지 못하고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출마한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돼 군부 정권의 종식에 실패했다.

◇1990∼1993, '호랑이굴' 3당 합당으로 마침내 대권 장악 = 1990년 1월 3당합당은 '승부사'라는 자신의 별명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으로서 청와대의 주인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구국의 결단'을 명분으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을 합쳐 민자당을 창당했다.

평생 투쟁의 대상이었던 정치 세력과 손을 맞잡은 것으로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합당을 결행했다.

이후 여소야대를 일순간 뒤집고 여당의 2인자로 변신에 성공했으며, 우여곡절을 거치며 2년 만인 92년 5월 민자당 후보로 선출돼 같은 해 대권까지 거머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꿈"이라던 거제 섬소년이 1954년 의회에 입성하고 나서 38년만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1993∼1998, 역사바로세우기로 90% 지지율, 아들 비리·IMF 위기로 퇴색 =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당시 하룻밤새 떨어진 별이 50개로 당시 파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케 한다.

또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1995년에는 '12·12 및 5·18 특별수사부'를 설치하고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다.

이와 함께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고, 쇠말뚝뽑기·구조선총독부 철거와 같은 일제 강점기 잔재 청산 작업이 이때 이뤄졌다.

금융실명제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추진했다. 1993년 8월 12일 '긴급 재정경제 명령 제16호'를 발동, 당일 오후 8시를 기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전격 시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초 90%에 달하는 지지율을 누리기도 했으나 정권의 인기를 의식한 깜짝 행보 식의 독단적인 정책과 부패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1997년 1월 한보 사태가 터지고, 차남 김현철 씨가 이에 연루돼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김현철 씨에 대한 첩보가 계속 보고됐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1996년 12월26일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국회 처리를 하면서 정권은 급격한 하락세를 걷게 된다.

급기야 1997년 12월 6·25 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결국 정권교체의 빌미가 됐다. 그해 11월까지도 IMF의 심각성을 김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1998∼2015, 대선 때마다 '훈수'…DJ 서거 직전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 =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대선 때마다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총재에 대해 "대통령 시절 내가 감사원장과 총리에 임명한 인물이다.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것이 자연의 도리"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물밑 지원한다며 이 총재 측이 화형식까지 벌여 불편한 관계였으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해 당내 민주계가 대거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평생 숙적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화해는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 머무는 동안 이뤄졌다.

당시 신촌세브란스에서 사경을 헤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한 뒤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고 밝힌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에 조깅을 하며 강철 체력을 과시하던 김 전 대통령도 2013년 4월 폐렴으로 1년 6개월간 입원한 뒤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다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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